마이애미 마스터스가 3라운드에 접어들었습니다. 며칠 바빠서 경기를 잘 못 보다가 한 경기 챙겨 봤습니다. 일부러 찾아본 것은 아니고 마침 트니까 나오길래 카차노프 vs. 시너 경기를 보게 됐네요.

카차노프는 2018년 연말에 조코비치를 꺾고 파리 마스터스 우승, 2019년에 랭킹 8위까지 오르면서 기세가 좋았었는데 19년 후반기 이후로는 좀 힘을 못 쓰고 있네요. 현재 랭킹은 22위입니다. 타이틀도 파리 마스터스가 마지막이고..작년 성적은 20승 15패로 일견 나빠보이진 않는데 대회들마다 16강, 8강 벽을 못 넘고 떨어지네요.

반면 시너는 요즘 커리어 하이 랭킹을 찍으면서 기세가 좋죠. 아직 19세인데 31위에 올라 있어 이대로 가면 top 10 진입도 머지 않아 달성할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너는 풀 경기를 많이 챙겨보진 못하고 주로 하이라이트만 봤었는데, 인상깊었던건 작년 롤랑가로스에서 나달과의 경기 1세트가 아주 인상적이었네요. 묵직한 스트로크로 나달이랑 정면으로 스트로크 싸움을 하면서 눌러버리는 포인트가 많이 나왔는데 야 이거 물건이다 싶더군요. 물론 노련한 나달이 어쨌든 이기긴 했습니다만. 멘탈도 강한것같고 기대가 됩니다.

오늘 경기는 어떻게 보면 좀 지루할수도 있는 주구장창 스트로크 싸움 양상이었네요. 한 게임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1세트는 4-4까지 갔다가 카차노프가 결정적인 브레이크 찬스에서 멋진 발리로 브레이크하면서 분위기를 가져오고 그대로 6-4로 마무리가 됐습니다.

날씨가 엄청 더운것 같습니다. 둘다 얼음찜질을 하고, 2세트 초반부터 시너가 지쳐서 힘들어하는게 눈에 띄게 보이더군요. 그래서였는지 시너가 다소 과감하게 카차노프 서브게임은 그냥 버리다시피 하고 자기 게임만 가져오는 식으로 전략을 바꾼것 같았습니다. 카차노프는 2세트 5-5가 될때까지 첫 서브 득점 성공률의 93%에 달할 정도로, 일견 숫자를 보면 카차노프가 기가 막히게 친것같은데 사실 그렇다기보다 시너가 그냥 크게 힘 들이지 않고 무리한 랠리는 아예 포기해버리는 그림이 자주 나왔습니다. 사실 이런 전략은 내 게임은 100%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택하기 힘들것같은데, 나름 스트로크에는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기 게임은 그래도 다 지켜 내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아낀 체력을 아마 마지막 게임을 브레이크하든지,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었던 듯합니다. 

5-5에서 브레이크 위기가 한번 있었지만 잘 막아내고 타이브레이크에 갔는데, 타이브레이크에 들어가자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힘을 내서 기어를 한 단계 올리는 모습입니다. 스트로크가 다시 힘이 실리고 랠리도 끝까지 공을 받아내더군요. 사실 카차노프도 스트로크 파워 하면 누구한테 밀리지 않는데 시너가 포, 백 가리지 않고 뻥뻥 쳐대는데 점점 베이스라인 뒤로 밀리면서 막아내기 급급하다가 결국 타이브레이크를 내줍니다.

3세트는 오후 4시 정도 되니 햇볕이 좀 약해지고, 구름도 끼는지 중간중간 코트에 그늘이 드리워서 한결 플레이하기가 수월한것 같았습니다. 시너가 기어를 올린 상태를 유지하면서, 여전히 한게임씩 주고받는 양상이긴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시너의 스트로크가 더 좋았습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아 이건 시너가 이긴다 이런 느낌이 들더군요. 

4-4, 40-40 상황에서 랠리 끝에 카차노프가 살짝 떨군 드롭발리를 시너가 전력질주해 받아내면서 깊은 각도로 네트를 넘겨 어드밴티지를 따낸 포인트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카차노프의 언포스드 에러로 그대로 브레이크하면서 5-4가 되고, 시너가 별다른 위기 없이 자기 게임을 지켜 6-4로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사실 주구장창 스트로크 싸움하는것 별로 좋아하진 않아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는데, 시너의 나이를 감안하면 과감하고 노련한 경기 운영이 돋보였던 경기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몸은 호리호리해서 별로 그럴것같지 않은데 스트로크가 진짜 파워 넘치고 묵직해서 상대 선수들이 고전할것같아요. 경험이 좀 더 쌓이면 정말 크게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인 것 같습니다. 멘탈도 튼튼해보이고.

카차노프는 이번에도 다소 이른 탈락으로 좀 아쉽게 됐네요. 올해 성적은 보면 9승 5패로 그럭저럭 하고는 있는데, 조만간에 반등을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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